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4년 10월 21일 이른 아침 일곱 시 삼십팔 분께 서울 성수대교에서 10번과 11번 교각 사이에 놓인 윗부분 트러스 가운데 길이 약 50m가 한강 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다리 위의 승합차와 승용차도 함께 강으로 빠졌고, 같은 시각 그 구간을 지나던 시내버스까지 떨어지면서 등교 중이던 학생을 포함한 승객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참사로 사망 32명, 부상 17명, 합계 49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조사에서는 트러스 이음부 용접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 유지·관리가 부실했던 점, 볼트를 조이는 과정의 결함, 허용 중량을 넘긴 차량의 통행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타임라인 기록 10개
- 1993년보도됨
동부간선도로 개통과 통행량 증가
붕괴 1년 전 동부간선도로가 문을 열자 성수대교를 이용하는 차량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이를 고려한 대응을 마련하지 않았다.
- 1994년 10월 21일보도됨
서울시장 자리 물러남
사고 당일 오후 7시 무렵 책임을 지는 형식으로 이원종 서울시장이 직을 내려놓았다. 이어 임명된 우명규 시장은 성수대교 건설 당시 책임을 맡았던 이력이 알려지면서 11일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 1994년 10월 21일보도됨
상부 트러스 붕괴
10번과 11번 교각 구간에서 상부 트러스 약 50미터가 강 쪽으로 가라앉았다. 그 위에 있던 승합차와 승용차도 함께 추락했다.
- 1994년 10월 21일보도됨
16번 시내버스 추락
다리 위를 달리던 16번 시내버스 역시 한강으로 떨어졌다. 탑승자 31명 가운데 29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 1994년 10월보도됨
대책본부 가동과 구조 작업
서울특별시는 대책본부를 꾸리고 여덟 개 반을 구성했다. 소방, 구조, 해난구조 인력이 인명 구조와 주검 수습에 투입됐으며, 숨진 이와 다친 이들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 1994년 11월 3일보도됨
새 서울시장 취임
최병렬 씨가 서울시장직에 올랐다.
- 1995년 4월 26일보도됨
재가설 공사 시작
토목학계가 보강을 권했지만, 시민 정서를 살펴 새로 짓는 방안이 채택됐다. 시공은 현대건설이 맡아 공사를 시작했다.
- 1997년 7월 3일보도됨
직선 차로 완공
재가설된 성수대교의 직선 차로 공사가 끝났다. 확장 계획이 잡혀 있던 탓에 진입로 램프는 이 단계에서 만들지 않았다.
- 1999년 11월 22일보도됨
당산철교 재개통
성수대교와 동일한 트러스 형식으로 지어졌던 당산철교는 해체 후 다시 건설돼 문을 열었다.
- 2004년 9월보도됨
확장 공사 마무리
1998년 12월 말께 다리의 너비와 길이를 키우는 확장 작업과 진입 램프 신설이 진행됐다. 2004년 9월에는 전체 공사가 완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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