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 기억합니다사고2016-10-28 업데이트

애버밴 참사

다른 이름: 애버밴 산사태 · 판트글라스 초등학교 참사

1966년 10월 21일, 웨일스 애버밴 마을 위편에 쌓여 있던 석탄 버력더미가 장기간 내린 폭우로 수분을 잔뜩 머금은 채 허물어졌다. 쏟아진 토사가 마을의 판트글라스 지구를 휩쓸었고, 그 과정에서 판트글라스 초등학교 학생과 교직원을 비롯한 수많은 주민이 숨졌다. 조사위는 이번 재난의 귀책 사유가 석탄위원회에 있다고 분명히 결론지었다.

그래서 지금은?보고서에는 석탄위원회의 과실이 명기됐고, 직원 아홉 명에게 견책이 내려졌다. 형사 소추는 기관과 개인 어느 쪽에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기관에 대한 과태료 역시 부과되지 않았다. 그 뒤 잔존하던 폐석더미는 제거됐고, 1969년에는 광산·채석장(버력더미) 관련 법률이 제정됐다. 2007년 웨일스 정부는 두 자선단체에 자금을 전달했다. 2016년에는 반세기 기념 추도 행사가 열렸고, 2022년에는 기림 정원과 폐석더미 부지가 '특별 역사적 관심 공원 및 정원' 목록에 편입됐다.

타임라인 기록 9개

  1. 1966년 10월 21일보도됨

    7번 버력더미 붕괴

    장기간 비로 물기를 머금은 7번 폐석더미가 무너지며 판트글라스 지구 쪽으로 쏟아져 내렸다. 이 사고로 판트글라스 초등학교 학생과 교사가 큰 화를 입었다.

  2. 1966년 11월 2일보도됨

    조사위 공개 청문 시작

    조사위원회는 첫 공개 회의를 개최한 뒤 대략 다섯 달 동안 공개 진술을 청취했다.

  3. 1967년 8월 3일보도됨

    보고서 결론과 징계

    조사위가 작성한 보고서는 재해의 책임 소재를 석탄위원회로 지목했다. 그 결과 직원 아홉 명이 견책 처분을 받았다.

  4. 1968년보도됨

    잔여 버력더미 철거

    주민 측 요구를 받아들여 남은 폐석더미를 제거하기로 정해졌다. 철거에 최종적으로 85만 파운드가 소요됐고,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참사 기금 중 15만 파운드가 다른 용도로 돌려졌다.

  5. 1969년보도됨

    관련 법률 제정

    참사로 제기된 문제의식을 반영해 폐석더미 관리를 규율하는 새 법이 마련됐다.

  6. 1973년 3월보도됨

    추모 정원 개장

    판트글라스 초등학교 부지에 꾸며진 기림 정원을 여왕이 공식 개방했다.

  7. 1997년보도됨

    추모 기금 회수

    영국 정부는 철거 비용으로 전용했던 15만 파운드를 추모 기금으로 다시 채워 넣었다.

  8. 2007년 2월보도됨

    웨일스 정부 기부 발표

    웨일스 당국은 추모 단체 측에 150만 파운드를, 애버밴 교육 자선기관 측에 50만 파운드를 내놓기로 공표했다.

  9. 2016년 10월보도됨

    50주년 추모 행사

    참사 50주년이 되던 해, 기림 정원과 공동묘지 일대에서 추도 의식이 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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