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사건2006-12-31 업데이트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

다른 이름: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

1984년 가을, 9월 17일에 시작해 27일까지 서울대 캠퍼스 안에서 학생들이 외부인 네 명을 정보기관의 끄나풀로 단정하고 가둔 뒤 폭행과 고문을 가했다. 피해자들은 최소 22시간에서 최장 6일에 걸쳐 각목으로 맞고 물고문을 겪었다고 알려졌다. 이후 경찰과 법원은 피해자들이 프락치가 아니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지금은?이 사건과 얽힌 형사 공판에서는 1심과 2심에서 각각 형이 정해졌다. 그 뒤 2004년 선거 홍보물을 둘러싸고 불거진 허위사실 공표 건은 대법원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다.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폭력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에 고통받았고, 진로를 바꿔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타임라인 기록 6개

  1. 1984년보도됨

    수사와 재판의 결론

    수사 당국과 법원은 피해자들이 프락치가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2. 1984년보도됨

    폭로 이후의 수배와 구속

    폭행 사실이 외부로 드러나자 학생 지도부 인사들은 몸을 숨겼고 수배가 내려졌다. 당시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이었던 유시민은 구속 처분을 받았다.

  3. 1984년 9월 17일✓ 확인됨

    감금과 폭행의 발단

    서울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타 대학 학생과 일반인 등 네 명을 프락치로 의심해 가둔 채 폭력을 휘둘렀다. 가혹행위는 9월 27일까지 계속됐다.

  4. 1986년보도됨

    저서 《아침으로 가는 길》

    유시민은 자신의 책 《아침으로 가는 길》에서 사건의 전말과 재판이 진행된 과정을 독자에게 전했다.

  5. 2004년 4월✓ 확인됨

    2004년 선거 홍보물 소송

    2004년 4월 치러진 제17대 총선 당시 제작된 선거 홍보물 내용을 문제 삼아 피해자들이 고소했다. 1심에서는 벌금 50만 원이 내려졌지만, 대법원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6. 2006년보도됨

    2006년 기자회견

    2006년에 한나라당 측이 연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측은 가해 혐의와 관련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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