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 기억합니다사고1972-02-16 업데이트

남영호 침몰 사고

다른 이름: 남영호 침몰사건

1970년 12월 15일 새벽 제주에서 부산 방향으로 운항하던 남영호가 거문도 동쪽 바다에서 가라앉았다. 이 사고로 326명이 숨졌고 6명이 살아남았다. 조사에서는 정원을 넘긴 승선, 화물 과적, 선박 상태 불량, 해양경찰의 늦은 대응 등이 주된 원인으로 거론됐다.

그래서 지금은?1971년 6월 8일 부산지방법원 선고 이후 대법원에서 1972년 2월 16일 선장에게 금고 2년 6개월형이 확정됐다. 사망자 1인당 69만여 원의 보상금이 결정되어 유족에게 지급됐고, 이후 여객선 운항관리제도가 새로 마련됐다. 사고를 소재로 한 가요 〈밤항구 연락선〉은 금지곡으로 묶였다.

타임라인 기록 9개

  1. 1968년 3월 5일보도됨

    남영호 취항

    남영호는 부산과 제주를 잇는 정기 여객선으로 처음 운항길에 올랐다.

  2. 1970년 12월 15일✓ 확인됨

    운항관리제도 마련

    참사 이후 여객선 운항관리제도가 새로 마련됐다.

  3. 1970년 12월 15일✓ 확인됨

    남영호 침몰

    남영호가 거문도 동쪽 해역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326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4. 1970년 12월 15일✓ 확인됨

    해경 출동 지연

    한국 해양경찰은 일본 순시선보다 네 시간 늦은 오후 1시에 현장으로 출발했다.

  5. 1970년 12월 16일보도됨

    생존 가능성 판단

    침몰 후 30시간이 지나자 관계 기관은 승객의 생존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6. 1970년 12월 18일보도됨

    장관 사직 의사 표명

    사고에 따른 책임을 지고 내무부 장관과 교통부 장관이 국무총리에게 사직 의사를 밝혔다.

  7. 1970년 12월 28일보도됨

    국회 조사 결과

    국회 특별위원회는 감독 기관이 제대로 살피지 못해 정원을 넘긴 승선과 과적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8. 1971년 6월 8일보도됨

    1심 판결

    부산지방법원은 선장에게 금고 3년을 선고했고, 선주와 통신장 등 관련자에게도 형을 선고했다.

  9. 1972년 2월 16일보도됨

    선장 형 확정

    항소심 선고를 받은 선장의 금고 2년 6개월형을 대법원이 최종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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