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 기억합니다사건1993-04-19 업데이트

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사건

다른 이름: 혜화동 총기난사 사건 · 혜화동 탈영병 총격 사건

1993년 4월 19일 육군 일병 한 명이 강원도 철원군 부대에서 소총·실탄·수류탄을 지닌 채 무장 이탈했다. 그는 주민을 납치한 뒤 그 차량으로 서울에 들어와 종로구 혜화동 일대에서 총기를 쏘며 인질극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일곱 명이 다쳤다.

그래서 지금은?사건 뒤 해당 사단장과 군단 군사경찰대장은 직위에서 물러났다. 중대장 등 4명은 구속돼 군사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청은 당시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서면 경고 조치를 내렸고, 근무를 소홀히 한 직원은 엄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총경급 경찰간부도 인사 조치를 받았다.

타임라인 기록 7개

  1. 1993년 4월 19일보도됨

    철원 부대 무장 이탈

    강원도 철원군의 육군 부대를 새벽 3시 40분쯤 빠져나간 병사는 기관단총, 실탄, 수류탄을 지니고 있었다.

  2. 1993년 4월 19일보도됨

    주민 납치 후 서울 잠입

    철원군에서 주민을 납치했고, 이후 그 차량을 이용해 서울에 숨어들었다.

  3. 1993년보도됨

    경찰청 서면경고 처분

    경찰청이 당시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서면 경고 조치를 내렸다. 아울러 근무를 소홀히 한 직원은 엄벌하겠다는 방침을 공표했다.

  4. 1993년보도됨

    총경급 간부 인사조치

    총경급 경찰간부가 사건 책임과 관련해 인사 조치를 받았다.

  5. 1993년 4월 19일보도됨

    혜화동 총격과 인질극

    오전 11시 35분쯤 혜화동에서 경찰이 멈춰 세우려 하자 응하지 않고 총을 쏘아 3명이 중상이나 경상을 입었다. 이어 행인을 인질로 삼은 뒤 다시 총격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시민 한 명이 숨졌다.

  6. 1993년 4월 19일보도됨

    특별경호대 총격 끝 검거

    오후 12시 4분쯤 체포가 이뤄졌으며,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특별경호대원들이 쏜 총격으로 제압됐다.

  7. 1993년보도됨

    지휘부 인사 조치·중대장 구속

    해당 사단장과 군단 군사경찰대장은 직위에서 물러났고, 중대장 등 4명은 구속돼 군사재판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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