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단식 농성 사건
1983년 5월 18일 야당 지도자 김영삼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3주년을 계기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다섯 가지 항목을 내걸고 단식에 들어갔다. 5월 25일에는 건강 악화로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 조치가 이뤄졌으나, 그는 병상에서도 단식을 이어갔다. 이 일은 국내외에 전해졌으며, 정부 측의 회유와 민정당 권익현 사무총장의 설득에도 김영삼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타임라인 기록 8개
- 1983년 5월 18일보도됨
민주화 5개항 내걸고 단식 시작
5·18 광주 민주화 운동 3주년을 계기로 김영삼은 민주화 5개항을 담은 성명을 낸 뒤 단식에 돌입했다.
- 1983년 5월 19일보도됨
상도동계 동조 단식
상도동계 인사 70여 명이 김영삼 단식을 지원하는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같은 방식의 동조 단식에 나섰다.
- 1983년 5월 25일보도됨
병원 입원 조치
건강 악화로 김영삼은 서울대학교 병원에 옮겨져 입원하게 됐고, 입원 후에도 단식은 계속됐다.
- 1983년 5월 27일보도됨
권익현의 첫 방문
민정당 사무총장 권익현이 전두환 측의 뜻을 가지고 찾아와 단식 중단을 요청했으나, 김영삼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1983년 5월 29일보도됨
권익현의 재방문
권익현이 병원을 다시 찾았지만 김영삼의 답은 달라지지 않았고, 권익현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 1983년 6월 4일보도됨
병원 경고와 추기경 요청
병원 측은 단식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고 알렸고, 김수환 추기경은 단식을 멈춰 달라고 부탁했다.
- 1983년 6월 9일보도됨
단식 중단 선언
재야 원로들의 권고를 따라 김영삼은 단식을 끝낸다고 공표했다.
- 1983년 6월 30일보도됨
서울대 병원 퇴원
6월 30일 김영삼이 서울대 병원을 나서면서 입원 생활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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