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사건1960-12-31 업데이트

9·28 사건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다른 이름: 9·28 사건 ·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 9·28 사태

1956년 9월 28일 서울 시공관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제4대 부통령 장면이 연설을 마치고 내려오던 중 총에 맞아 왼손을 다쳤습니다. 저격범들은 '조병옥 박사 만세'를 외쳐 민주당 내부 갈등처럼 보이게 하려 했습니다. 경찰은 배후로 지목된 최훈 등을 체포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저격범들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장면의 탄원으로 형이 감형됐습니다. 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내무부와 치안국 등 경찰 간부의 배후 개입 정황이 드러났고, 1960년 4·19혁명 이후 김종원의 법정 진술로 배후 지시 경로가 밝혀졌습니다.

타임라인 기록 9개

  1. 1956년 9월 28일보도됨

    장면 부통령 피격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장면 부통령이 연설 후 하단하던 중 총에 맞아 왼손을 다쳤습니다. 저격범들은 '조병옥 박사 만세'를 외치고 도주했으며, 현장 근처에서 체포됐습니다.

  2. 1956년 10월 1일보도됨

    배후 인물 최훈 구속

    피격 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최훈이 구속됐습니다.

  3. 1956년 10월 4일보도됨

    국회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피격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국회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4. 1956년 12월 1일보도됨

    첫 공판 개시

    피격 사건의 첫 공판이 열렸습니다.

  5. 1957년 1월 1일보도됨

    이덕신 구속

    최훈의 부인이 전 성동경찰서 사찰주임 이덕신을 배후 인물로 지목했고, 검찰은 이덕신을 구속했습니다. 최훈은 법정에서 치안국장 김종원이 배후라고 진술했으나 김종원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6. 1957년 3월 21일보도됨

    피고인들 사형 언도

    이덕신, 최훈, 김상붕 등 피고인들에게 사형이 언도됐습니다.

  7. 1957년 11월 1일보도됨

    대법원 최종 심리, 사형 선고

    대법원 최종 심리에서 저격범 7인에게 사형이 최종 선고됐습니다.

  8. 1957년 11월 2일보도됨

    장면의 관용 탄원과 감형

    장면은 저격범 7인에 대한 관용을 탄원했고, 이후 형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습니다.

  9. 1960년보도됨

    4·19혁명 이후 김종원 법정 진술

    4·19혁명 이후 법정에 선 김종원이 사건을 임흥순의 지시로 저질렀다고 진술하면서 배후 지시 경로가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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