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 기억합니다사고1993-12-13 업데이트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인근 해상에서 군산 서해훼리 소속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돌풍을 만나 침몰했습니다. 사고로 292명이 사망했으며,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해양 사고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사고 당시 선박에는 정원을 넘는 362명의 승객과 화물 16톤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12월 1일 해양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조사반은 선박 구조에는 문제가 없고 정원 초과와 과적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12월 13일 전주지검은 초과 승선, 과적, 운항부주의, 방수구 부족 등을 사고 원인으로 발표했습니다. 유가족에게는 사망자 1인당 9,910만원이 지급됐으며, 이후 교통부장관과 해운항만청장 등이 문책 해임됐습니다.

타임라인 기록 7개

  1. 1993년 10월 10일보도됨

    서해훼리호 침몰

    오전 9시 40분경 위도 파장금항을 떠난 서해훼리호가 10시 10분쯤 임수도 부근에서 돌풍을 만나 회항하던 중 파도를 맞아 전복되고 침몰했습니다.

  2. 1993년 10월 10일보도됨

    초기 구조 및 수색

    인근 조업 어선들이 40여 명을 구조했고, 이후 어선과 헬기, 군경 함정이 동원된 수색이 시작됐습니다. 22시까지 70명이 구조되고 51구의 시신이 인양됐습니다.

  3. 1993년 10월 15일보도됨

    선장 등 시신 발견

    선장과 기관장, 갑판장의 시신이 침몰한 선박의 통신실에서 발견됐습니다.

  4. 1993년 10월 17일보도됨

    선체 인양 중 재침몰

    선체를 인양하던 중 연결한 줄이 끊어져 선박이 다시 침몰했으며, 10월 27일 다시 인양됐습니다.

  5. 1993년 11월 2일보도됨

    시신 인양 완료

    신고된 마지막 실종자를 끝으로 모두 292구의 시신이 인양됐습니다.

  6. 1993년 12월 1일보도됨

    합동조사반 발표

    해양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조사반은 선박 구조에는 문제가 없고 정원 초과와 과적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7. 1993년 12월 13일보도됨

    전주지검 수사 결과 발표

    사건을 수사한 전주지검은 초과 승선, 과적, 운항부주의, 방수구 부족 등이 사고의 원인이었다고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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