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 기억합니다정치2006-03-28 업데이트

남민전 사건

다른 이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

1976년 2월 무렵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 등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라는 은밀한 단체를 결성했다. 이들은 유신 체제에 저항하고 무장 혁명을 이루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았다. 그 뒤 1978년에서 1979년 4월 사이 서울 강남 지역에서 생긴 강도 및 절도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1979년 10월에 대규모 검거가 진행됐다. 당국은 이 사안을 북한과 관련된 국가 전복 모의로 발표했다.

그래서 지금은?대법원에서 피고인들이 제기한 상고가 기각되었다. 1981년에는 이재문이 교도소 안에서 사망했으며, 1982년에는 신향식에 대한 형 집행이 이뤄졌다. 2006년 3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관련자 29명을 민주화운동 관계자로 확인했다.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진보 단체였다는 견해와, 당시 민주화 진영 내부에서 사상적으로 성격이 달랐던 집단이었다는 견해가 병존한다.

타임라인 기록 8개

  1. 1976년 2월보도됨

    비밀 조직 결성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을 몰래 꾸렸다.

  2. 1977년 1월보도됨

    반유신 유인물 살포

    '민중의 소리'라는 제목의 전단을 여러 차례 배포하며 유신 체제를 비판하는 활동을 벌였다.

  3. 1978년보도됨

    강남권 강도·절도 사건

    서울 강남 일대에서 연이어 발생한 강도·절도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남민전 사건이 커졌다.

  4. 1979년 10월 4일보도됨

    조직원 구속

    1979년 11월 기준으로 붙잡혀 구속된 인원은 84명에 달했다.

  5. 1979년 10월 9일보도됨

    수사 결과 발표

    내무부 장관 구자춘은 총책인 이재문 등 20명의 신병을 확보했다고 알리며, 남은 잔존 세력 54명을 대상으로 체포 명령이 내려졌다고 공표했다.

  6. 1981년보도됨

    이재문 옥중 사망

    이재문은 조직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사형을 선고받은 뒤 옥중에서 생을 마감했다.

  7. 1982년보도됨

    신향식 사형 집행

    조직을 지휘했던 신향식은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는 결과를 맞았다.

  8. 2006년 3월보도됨

    관련자 29명 인정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남민전과 관계된 사람들 가운데 29명을 민주화운동 관계자로 공적으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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