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 기억합니다사고1956-06-01 업데이트

창경호 침몰 사고

다른 이름: 창경호 침몰 사고(昌景號浸沒事故)

1953년 1월 9일, 여수에서 부산으로 운항하던 정기 여객선 창경호가 다대포 앞바다 거북섬 부근에서 강풍을 만나 침몰했다. 구조된 승객은 매우 적었고, 희생자는 300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은 파도, 정해진 인원을 초과한 승선, 한쪽으로 쏠린 화물 적재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래서 지금은?1953년 5월 16일 부산지방법원은 선고 공판에서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했다. 선장에게는 금고 3년, 대동상선 사장에게는 금고 2년을 선고했고, 선원들에게는 무죄를 내렸다. 이 사고를 계기로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운송 사업자와 감독 기관의 책임을 강화하는 특별처벌법 초안이 마련됐다. 선체 인양은 1955년 12월 6일에 끝났다.

타임라인 기록 7개

  1. 1953년 1월 9일✓ 확인됨

    창경호 침몰

    여수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창경호가 다대포 바다에서 세찬 바람을 만나 물에 잠겼다.

  2. 1953년 1월 10일보도됨

    사고 해역 확인, 시신 인양

    이튿날 수색을 통해 침몰 위치가 확인됐고, 시신 다섯 구가 수습됐다.

  3. 1953년 1월 13일보도됨

    국회 진상조사 결의

    국회는 사고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의결했다.

  4. 1953년 1월 24일보도됨

    수습 시신 266구

    이 시점까지 266구의 시신이 수습됐으며, 약 40명은 물살에 휩쓸려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5. 1953년 5월 16일보도됨

    부산지방법원 선고

    법원은 고의 살인이 아닌 업무상과실치사로 판단했다. 선장은 금고 3년, 대동상선 사장은 금고 2년을 선고받았고, 선원들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6. 1955년 12월 6일보도됨

    선체 인양 완료

    1953년 3월 8일에 시작된 선체 인양 작업은 1955년 12월 6일에야 마무리됐다.

  7. 1956년 6월 1일보도됨

    수리 중 선체에서 시신 발견

    재운항을 준비하며 수리를 진행하던 선체 안에서 시신 세 구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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