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정치1955-09-17 업데이트

대구매일신문 피습 사건

다른 이름: 대구 매일신문 피습사건 · 대구매일 테러 사건

1955년 9월 14일, 대구의 매일신문사가 정치 폭력배의 습격을 받아 사원들이 중상과 경상을 입었고 인쇄 설비도 부서졌다. 전날인 9월 13일 주필 겸 편집국장 최석채가 쓴 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가 실린 것이 발단이었다. 사설이 자유당 정부의 관제 시위와 학생 동원을 비판하자 국민회 경상북도 본부는 사설의 취소와 사과, 필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통고문을 보냈다. 신문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습격이 이어졌다.

그래서 지금은?사건 뒤 경북도 사찰과장은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습격범과 정치 폭력배는 검거되지 않았다. 반면 최석채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가 인정되어 석방됐다. 이 사건은 권력을 비판한 신문 논설에 대해 권력 측이 가한 언론 폭력의 사례로 평가된다.

타임라인 기록 4개

  1. 1955년 9월 10일보도됨

    임병직 대사의 대구 방문

    유엔 대표부 상임대사 임병직이 대구에 머무는 동안, 동원된 중·고등학생들은 찌는 더위 속에서 세 시간에서 네 시간가량 대기해야 했다. 이 일로 대구 시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적지 않았다.

  2. 1955년 9월 13일보도됨

    최석채의 사설 게재

    주필 겸 편집국장 최석채가 쓴 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가 대구 매일신문에 실렸다. 이후 시내 곳곳에 사설의 필자를 비난하는 벽보가 나붙었다.

  3. 1955년 9월 14일보도됨

    신문사 습격

    국민회 경상북도 본부가 보낸 통고를 신문사가 따르지 않자, 오후 4시 10분 무렵 정치 폭력배 20여 명이 시내버스를 빼앗아 타고 신문사 쪽으로 향했다. 이 습격으로 사원들이 중상과 경상을 입었고 인쇄 설비가 파손됐다.

  4. 1955년 9월 17일보도됨

    테러 부인 발언과 구속

    사건 사흘 뒤 국회진상조사단에 출석한 경북도 사찰과장은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같은 시기 습격범은 체포되지 않았고, 최석채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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