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동해 어선 조난 사고
1976년 10월 28일에서 31일 사이 동해 일대를 휩쓴 풍랑으로 국내 어선 10여 척이 가라앉거나 연락이 끊겼다. 사망·실종자는 327명으로 집계됐으며, 국내 어선 해난 사고 중 가장 큰 규모로 알려졌다. 현장은 울릉도와 거리가 먼 대화퇴 어장이었고, 기상 예보보다 파도가 높았으며 우박과 소나기도 함께 쏟아졌다.
타임라인 기록 6개
- 1976년 10월 28일보도됨
폭풍주의보 발표, 풍랑 시작
중앙관상대가 해역별로 폭풍주의보를 발표했다. 동해의 악천후는 10월 31일까지 이어졌다.
- 1976년 10월 29일보도됨
긴급 구조 요청 뒤 교신 중단
묵호무전국이 제12어성호의 긴급 구조 신호를 접수했다. 같은 날 제5삼광호와 베델호, 신영호도 도움을 청했으나 이후 무선 교신이 끊겼다.
- 1976년 11월 3일보도됨
대책본부 설치, 피해 규모 집계
정부는 해난구조대책본부와 해난구조본부를 꾸려 수색과 구난에 착수했다. 이 시점까지 침몰 어선은 6척, 행방불명 어선은 13척으로 파악됐고, 희생자는 408명으로 확인됐다.
- 1976년 11월 10일보도됨
귀항 기한 초과, 생존 가능성 결론
11월 10일 귀항 예정일이 지나도록 실종 어선이 나타나지 않자, 대책본부는 실종 선원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 1976년 11월 17일보도됨
사도 앞바다서 시신 수습
일본 니가타현 사도군 해상에서 조난당한 제5금용호의 시신 15구가 구명복을 입은 상태로 발견됐다.
- 1976년 11월 18일보도됨
사또가 섬 부근서 추가 발견
사또가 섬 인근 해역에서는 시신 16구가 나왔으며, 발견은 11월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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