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 기억합니다사고1976-11-18 업데이트

1976년 동해 어선 조난 사고

1976년 10월 28일에서 31일 사이 동해 일대를 휩쓴 풍랑으로 국내 어선 10여 척이 가라앉거나 연락이 끊겼다. 사망·실종자는 327명으로 집계됐으며, 국내 어선 해난 사고 중 가장 큰 규모로 알려졌다. 현장은 울릉도와 거리가 먼 대화퇴 어장이었고, 기상 예보보다 파도가 높았으며 우박과 소나기도 함께 쏟아졌다.

그래서 지금은?11월 10일로 예정된 귀항일이 지나도록 실종 선박들이 복귀하지 않자, 대책본부는 생존자가 없을 것으로 보았다. 11월 17일과 18일 양일간 일본 니가타현 해변에서 시신 31구가 거두어졌다. 사고 원인으로는 열악한 어업 장비, 낡은 소형 선박의 먼 바다 출항, 어선 측의 허위 신고, 정확도가 떨어진 일기 예보, 구조 작업의 지연 등이 지적됐다.

타임라인 기록 6개

  1. 1976년 10월 28일보도됨

    폭풍주의보 발표, 풍랑 시작

    중앙관상대가 해역별로 폭풍주의보를 발표했다. 동해의 악천후는 10월 31일까지 이어졌다.

  2. 1976년 10월 29일보도됨

    긴급 구조 요청 뒤 교신 중단

    묵호무전국이 제12어성호의 긴급 구조 신호를 접수했다. 같은 날 제5삼광호와 베델호, 신영호도 도움을 청했으나 이후 무선 교신이 끊겼다.

  3. 1976년 11월 3일보도됨

    대책본부 설치, 피해 규모 집계

    정부는 해난구조대책본부와 해난구조본부를 꾸려 수색과 구난에 착수했다. 이 시점까지 침몰 어선은 6척, 행방불명 어선은 13척으로 파악됐고, 희생자는 408명으로 확인됐다.

  4. 1976년 11월 10일보도됨

    귀항 기한 초과, 생존 가능성 결론

    11월 10일 귀항 예정일이 지나도록 실종 어선이 나타나지 않자, 대책본부는 실종 선원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5. 1976년 11월 17일보도됨

    사도 앞바다서 시신 수습

    일본 니가타현 사도군 해상에서 조난당한 제5금용호의 시신 15구가 구명복을 입은 상태로 발견됐다.

  6. 1976년 11월 18일보도됨

    사또가 섬 부근서 추가 발견

    사또가 섬 인근 해역에서는 시신 16구가 나왔으며, 발견은 11월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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