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1969년 12월 11일 강릉발 서울행 대한항공 국내선 YS-11기가 승객을 가장한 간첩의 손에 공중에서 탈취됐다. 항공기는 북한 선덕비행장에 내려앉도록 강요당했다. 북측은 이후 승객 일부와 승무원을 돌려보내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승무원 가운데 일부와 승객 가운데 일부는 끝내 귀환하지 못했다.
타임라인 기록 9개
- 1969년 12월 11일보도됨
여객기 공중 납치와 선덕비행장 착륙
강릉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YS-11기는 이륙한 지 머지않아 하늘에서 납치당했다. 기체는 북한의 선덕비행장으로 끌려가 착륙했다.
- 1969년 12월보도됨
평양방송 보도와 송환 요구
사건이 일어난 지 약 30시간이 지나 평양방송은 조종사가 스스로 북으로 넘어갔다고 전했다. 이후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회의에서 돌려보내라는 요구가 나왔으나 북측은 응하지 않았다.
- 1969년 12월 15일보도됨
치안국 초기 수사 발표
내무부 치안국은 초기 수사 결과에서 승객 쪽을 범행의 중심에 놓았다. 충분한 조사를 거치지 않은 발표였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 1969년 12월 16일보도됨
대한항공 사장의 반론
조중훈 대한항공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경찰 발표의 내용에 반론을 폈다. 부조종사는 이번 납북과 관계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1970년보도됨
야당의 책임 추궁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은 초기 수사와 발표가 허술했다고 비판하며 내무장관과 수사 책임자의 문책을 요구했다.
- 1970년 2월 5일보도됨
북측의 송환 발표
북한은 납북된 이들을 돌려보내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일부 승무원과 승객은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도 함께 전해졌다.
- 1970년 2월 14일보도됨
승객 39명 판문점 송환
판문점을 통해 승객 39명이 귀환하면서 사건은 종결 단계에 들어섰다. 다만 승무원 일부와 승객 일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 1970년 2월 15일보도됨
중앙정보부·치안국의 재수사 결과
중앙정보부와 치안국은 돌아온 피랍자들을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간첩이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앞선 초기 발표에서 거론된 인물들은 이번 발표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 2001년 2월보도됨
이산가족 방북단과 모자 상봉
송환되지 못한 승무원 한 명은 이산가족 방북단을 통해 평양을 찾은 어머니와 상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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