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전 대화재
1953년 11월 27일 저녁 8시 30분경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일대 피난민 판자촌에서 최초의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여러 곳으로 번져 부산 중구 일대와 부산역까지 확대됐습니다. 이튿날 6시 30분경에 불길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부산역이 전소되어 초량역은 폐역됐고, 1966년까지 가건물 역사를 사용하다 1968년 현재 위치인 초량동 인근으로 이전했습니다. 화재로 부산일보, KBS 부산방송총국, 부산우편국 등의 교통·통신·방송이 마비됐습니다. 당시 부산시장 손영수가 책임을 지고 사직했습니다.
타임라인 기록 6개
- 1953년 7월 27일보도됨
휴전협정 체결
그해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한국 전쟁이 휴전됐고, 대한민국 정부는 서울특별시로 돌아갔습니다.
- 1953년✓ 확인됨
피해 집계
주택 3,132채가 전소됐고 사상자 29명, 이재민 3만여 명이 발생했습니다. 보고된 피해액은 177억 환(현재 가치 1조 7700억 원)입니다.
- 1953년 11월 27일✓ 확인됨
부산역전 대화재 발생
11월 27일 저녁 8시 30분경 중구 영주동 일대 피난민 판자촌에서 최초의 화재가 발생했고, 바람을 타고 불길이 여러 곳으로 퍼졌습니다.
- 1953년 11월 28일보도됨
불길 진화
이튿날 6시 30분경 불길이 잡혔습니다.
- 1966년보도됨
가건물 역사 사용
화재 이후 초량역은 폐역됐고, 1966년까지 가건물 역사를 사용했습니다.
- 1968년보도됨
현재 위치로 이전
1966년 역사 착공 후 1968년 현재 위치인 초량동 인근으로 이전했습니다.
국내외 언론·공식 기록·보관소를 대조해 AI가 정리한 기록이에요. 확인됨=언론 2곳 이상·공식기록 일치, 보도됨=언론 1곳, 미확인=블로그·커뮤니티에만 있음. 중요한 내용은 출처에서 꼭 확인하세요. 잘못된 내용은 106ljune@gmail.com 으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