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 기억합니다사건2011-04-26 업데이트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

다른 이름: 아프간 피랍 사건 ·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 · 샘물교회 아프간 피랍 사건

2007년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 카라바그 일대를 지나 칸다하르로 향하던 대한민국 국민 23명이 탈레반 무장 세력의 손에 넘어갔다. 탈레반은 인질 가운데 두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한국 정부와 탈레반 사이의 교섭으로 나머지 인질들이 순차적으로 풀려났고, 이 사태는 42일 만에 마무리됐다.

그래서 지금은?2007년 9월 2일 살아남은 피랍자 19명이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 이후 2010년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4월 26일 법원은 국가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분당샘물교회는 위험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을 당분간 멈추겠다고 밝혔으며, 배형규 목사의 장례는 '순교자 천국환송예배'라는 이름으로 치러졌다.

타임라인 기록 7개

  1. 2007년 7월 19일✓ 확인됨

    카라바그 일대 피랍

    가즈니주 카라바그에서 칸다하르를 향해 이동하던 대한민국 국민 23명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붙잡혔다.

  2. 2007년 7월 25일✓ 확인됨

    팀 책임자 목사 피살

    탈레반은 팀의 책임자였던 목사를 먼저 살해했다. 이후 협상이 진척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남은 인질들에 대한 살해 위협을 이어갔다.

  3. 2007년 7월 30일보도됨

    두 번째 인질 피살

    탈레반은 생존해 있던 인질 한 명을 추가로 살해했다.

  4. 2007년 8월 28일보도됨

    교섭 합의 도달

    한국 정부와 탈레반이 직접 대면해 벌인 협상이 타결되어, 남아 있던 인질 19명 전원을 석방하기로 합의했다.

  5. 2007년 8월 31일보도됨

    인질 순차 석방

    8월 29일과 30일을 거쳐 인질들이 단계적으로 풀려났고, 사태 발생 이후 42일 만에 피랍 상황이 끝났다.

  6. 2007년 9월 2일보도됨

    생존 피랍자 19명 입국

    살아서 풀려난 피랍자 19명이 인천국제공항을 거쳐 국내로 돌아왔다.

  7. 2011년 4월 26일보도됨

    손해배상 소송 결과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국가가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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