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사회2006-12-14 업데이트

정원식 계란 투척 사건

다른 이름: 정원식 폭행 사건 · 외대 사태 · 6·3 외대 사태 · 외대 계란 사건

1991년 6월 3일 저녁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무총리 서리로 내정된 정원식이 마지막 강의를 마친 뒤, 학생들로부터 달걀과 밀가루, 페인트, 유리조각, 인분 등을 맞고 집단 폭행을 당했습니다. 학생들은 그가 문교부 장관 재직 중 전교조를 불법화하고 교사들을 해직한 데 반발했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며 사회적 논란으로 번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사건 이후 주동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제적 등의 징계를 받았고, 체포와 재판을 거쳐 1심과 항소심에서 실형 및 집행유예 등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2006년 12월 14일 당시 한국외국어대 학생들은 명예회복 조치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학생운동에 대한 사회적 반감과 교수·교사의 직업적 지위에 대한 논의를 낳았습니다.

타임라인 기록 8개

  1. 1991년 5월 24일보도됨

    국무총리 서리 내정

    정원식이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대학 강사 일정을 이어갔습니다.

  2. 1991년 6월 3일✓ 확인됨

    외대 교육대학원 집단 폭행

    오후 6시 30분경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오던 정원식이 학생들로부터 달걀과 밀가루 세례를 받고 집단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는 전교조 불법화에 대한 학생 운동권의 반발이었습니다.

  3. 1991년 6월 4일보도됨

    정부 대응 및 검찰 수사 착수

    노태우 대통령이 대책을 지시했고,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이 사건을 국가와 인륜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했습니다. 이후 검찰 수사로 사건이 확대되었습니다.

  4. 1991년 6월 5일보도됨

    학생 310명 체포

    검찰과 경찰의 합동 수사본부가 조직되어 시위에 참여한 학생 310명을 체포했습니다. 이 중 핵심 주동자 64명을 철야 조사했습니다.

  5. 1991년 11월 2일보도됨

    주동 학생 추가 검거

    끝까지 피신하던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이 서울 청량리동에서 검거되었습니다.

  6. 1991년 12월 17일보도됨

    1심 선고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은 폭력행위 가중처벌법 등 위반죄를 적용해 주동 학생들에게 징역형을,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집행유예와 훈방 조치를 내렸습니다.

  7. 1991년 12월 30일보도됨

    항소심 최종 선고

    서울지법 북부지원 항소심에서 일부 형량이 조정되었고, 다른 학생들은 집행유예 또는 훈방 조치를 받았습니다.

  8. 2006년 12월 14일보도됨

    당시 학생 명예회복 조치

    당시 정원식에게 밀가루와 달걀을 던졌던 한국외국어대 학생들이 명예회복 조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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