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호 침몰 사고
1968년 5월 17일 해운공사 소속 유조선 천지호가 벙커C유 7천 톤을 싣고 울산에서 인천으로 항해하던 중, 목포 부근 병풍도 해상에서 짙은 안개와 폭풍으로 좌초·침몰했습니다. 승선자 48명 중 31명이 구조됐고 16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침몰로 유출된 기름이 흑산도와 고군산열도까지 확산돼 어장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타임라인 기록 6개
- 1968년 5월 17일보도됨
천지호 울산 출항 후 병풍도 부근 침몰
천지호가 벙커C유 7천 톤을 싣고 울산에서 인천으로 항해하던 중, 21시경 목포 동남방 병풍도 부근 해상에서 짙은 안개와 폭풍으로 좌초·침몰했습니다.
- 1968년 5월 17일보도됨
긴급 구조 요청과 승선자 구조
천지호는 11시 45분경 목포 해운국에 긴급 구조를 요청했고, 출동한 구조 선박들이 승선자 48명 중 31명을 구조했습니다. 구조되지 못한 16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 1968년 5월보도됨
시신 3구 인양
해군과 해경 함정, 대한유조회사 선박들이 인양 작업에 참가했으나 안개와 파도로 5월 20일까지 3구의 시신을 인양하는 데 그쳤습니다.
- 1968년 9월 16일보도됨
선체 인양 및 관매도 예인
서울 한성 살베지 회사가 침몰한 천지호를 인양해 관매도로 예인했습니다. 기름 유출을 막기 위해 폭파도 고려됐으나 예인으로 결정됐습니다.
- 1968년 10월 23일보도됨
인천항 예인 중 재침몰
천지호는 인천항으로 예인되던 중 강풍과 조류의 영향으로 맹골도 부근에서 다시 침몰했습니다.
- 1973년 7월 19일보도됨
서울지방법원 손해배상 판결
서울지방법원 공판에서 대한유조선측이 완도군 어업협동조합측에 6,600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고, 소유주인 대한해운공사에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시됐습니다.
이 사건의 일부 기록은 위키백과 문서(천지호 침몰 사고)를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위키백과에서 온 내용은 CC BY-SA 4.0 라이선스를 따르며, 같은 조건으로 다시 쓸 수 있어요.
국내외 언론·공식 기록·보관소를 대조해 AI가 정리한 기록이에요. 기사 본문·사진은 싣지 않고, 사실을 우리 말로 정리한 뒤 원문 링크를 붙여요. 저작권 침해 신고: 106ljune@gmail.com (받는 즉시 내려요). 확인됨=언론 2곳 이상·공식기록 일치, 보도됨=언론 1곳, 미확인=블로그·커뮤니티에만 있음. 중요한 내용은 출처에서 꼭 확인하세요. 잘못된 내용은 106ljune@gmail.com 으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