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 기억합니다사고1973-07-19 업데이트

천지호 침몰 사고

다른 이름: 天池號沈沒事故

1968년 5월 17일 해운공사 소속 유조선 천지호가 벙커C유 7천 톤을 싣고 울산에서 인천으로 항해하던 중, 목포 부근 병풍도 해상에서 짙은 안개와 폭풍으로 좌초·침몰했습니다. 승선자 48명 중 31명이 구조됐고 16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침몰로 유출된 기름이 흑산도와 고군산열도까지 확산돼 어장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1968년 9월 선체가 인양되어 관매도로 예인됐으나, 10월 23일 인천항으로 예인하던 중 강풍과 조류로 맹골도 부근에서 다시 침몰했습니다. 1973년 7월 19일 서울지방법원 공판에서는 대한유조선측이 완도군 어업협동조합측에 6,600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고, 소유주인 대한해운공사에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시됐습니다.

타임라인 기록 6개

  1. 1968년 5월 17일보도됨

    천지호 울산 출항 후 병풍도 부근 침몰

    천지호가 벙커C유 7천 톤을 싣고 울산에서 인천으로 항해하던 중, 21시경 목포 동남방 병풍도 부근 해상에서 짙은 안개와 폭풍으로 좌초·침몰했습니다.

  2. 1968년 5월 17일보도됨

    긴급 구조 요청과 승선자 구조

    천지호는 11시 45분경 목포 해운국에 긴급 구조를 요청했고, 출동한 구조 선박들이 승선자 48명 중 31명을 구조했습니다. 구조되지 못한 16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3. 1968년 5월보도됨

    시신 3구 인양

    해군과 해경 함정, 대한유조회사 선박들이 인양 작업에 참가했으나 안개와 파도로 5월 20일까지 3구의 시신을 인양하는 데 그쳤습니다.

  4. 1968년 9월 16일보도됨

    선체 인양 및 관매도 예인

    서울 한성 살베지 회사가 침몰한 천지호를 인양해 관매도로 예인했습니다. 기름 유출을 막기 위해 폭파도 고려됐으나 예인으로 결정됐습니다.

  5. 1968년 10월 23일보도됨

    인천항 예인 중 재침몰

    천지호는 인천항으로 예인되던 중 강풍과 조류의 영향으로 맹골도 부근에서 다시 침몰했습니다.

  6. 1973년 7월 19일보도됨

    서울지방법원 손해배상 판결

    서울지방법원 공판에서 대한유조선측이 완도군 어업협동조합측에 6,600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고, 소유주인 대한해운공사에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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