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사태
1968년 1월 21일 밤 북한 124부대 소속 무장군인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해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쳤습니다. 이들은 창의문 부근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저항하며 도주했고, 군경합동 소탕작전이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을 포함해 30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생포된 김신조의 이름을 따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불립니다.
타임라인 기록 8개
- 1968년 1월 18일보도됨
무장공비 군사분계선 침투
남파 특공대가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었고, 얼어 있는 임진강을 걸어서 건넜습니다.
- 1968년 1월 21일보도됨
청와대 인근 무장공비 교전
밤 9시 30분경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인근까지 잠입했고, 창의문 부근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저항하며 도주했습니다.
- 1968년 1월 24일보도됨
북한의 책임 부인
북한은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발표하고 시신 인수를 거부했으며, 군사정전회의에서 1·21사태가 본회담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 1968년 1월 31일✓ 확인됨
군경합동 소탕작전 결과
1월 31일까지 이어진 군경합동 수색전 결과 31명 중 29명이 사살되었고 1명은 투항했으며 1명은 북한으로 도주했습니다. 민간인을 포함해 30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 1968년 4월보도됨
향토예비군 창설
4월 1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향토예비군이 창설됐습니다.
- 1971년보도됨
실미도 사건 발생
684부대가 계획 취소 후 방치된 결과, 3년 뒤인 1971년에 실미도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 1972년 5월 4일보도됨
김일성의 비밀회담 발언
김일성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비밀회담에서 1·21사태는 자신이나 당의 의사가 아니었고 내부의 좌경 맹동분자들이 한 짓이라고 말했습니다.
- 2013년 10월 24일보도됨
중국 외교부 기밀해제 문서 공개
청샤오허 중국 인민대학 교수가 김일성이 1965년에 제2차 한국 전쟁을 계획했으나 중국이 거부했다는 기밀해제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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