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 기억합니다정치2013-10-24 업데이트

1·21 사태

다른 이름: 김신조 사건 · 무신사변

1968년 1월 21일 밤 북한 124부대 소속 무장군인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해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쳤습니다. 이들은 창의문 부근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저항하며 도주했고, 군경합동 소탕작전이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을 포함해 30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생포된 김신조의 이름을 따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래서 지금은?사건 이후 향토예비군과 육군3사관학교가 창설되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련 교육이 실시됐습니다. 인왕산·북악산·청와대 앞길의 일반인 통행이 금지됐으며, 전 국민에게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고 육군 복무기간이 3년으로 늘어났습니다. 북한은 사건 관련성을 부인했고, 김일성은 1972년 비밀회담에서 이 사건이 자신이나 당의 의사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타임라인 기록 8개

  1. 1968년 1월 18일보도됨

    무장공비 군사분계선 침투

    남파 특공대가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었고, 얼어 있는 임진강을 걸어서 건넜습니다.

  2. 1968년 1월 21일보도됨

    청와대 인근 무장공비 교전

    밤 9시 30분경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인근까지 잠입했고, 창의문 부근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저항하며 도주했습니다.

  3. 1968년 1월 24일보도됨

    북한의 책임 부인

    북한은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발표하고 시신 인수를 거부했으며, 군사정전회의에서 1·21사태가 본회담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4. 1968년 1월 31일✓ 확인됨

    군경합동 소탕작전 결과

    1월 31일까지 이어진 군경합동 수색전 결과 31명 중 29명이 사살되었고 1명은 투항했으며 1명은 북한으로 도주했습니다. 민간인을 포함해 30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5. 1968년 4월보도됨

    향토예비군 창설

    4월 1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향토예비군이 창설됐습니다.

  6. 1971년보도됨

    실미도 사건 발생

    684부대가 계획 취소 후 방치된 결과, 3년 뒤인 1971년에 실미도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7. 1972년 5월 4일보도됨

    김일성의 비밀회담 발언

    김일성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비밀회담에서 1·21사태는 자신이나 당의 의사가 아니었고 내부의 좌경 맹동분자들이 한 짓이라고 말했습니다.

  8. 2013년 10월 24일보도됨

    중국 외교부 기밀해제 문서 공개

    청샤오허 중국 인민대학 교수가 김일성이 1965년에 제2차 한국 전쟁을 계획했으나 중국이 거부했다는 기밀해제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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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일부 기록은 위키백과 문서(1·21 사태)를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위키백과에서 온 내용은 CC BY-SA 4.0 라이선스를 따르며, 같은 조건으로 다시 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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