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6·25 전쟁 중이던 6월 28일 이른 새벽 두 시 반, 국군의 손으로 한강인도교가 폭파됐다. 같은 날 오전 여덟 시 무렵 북한군 전차 부대가 용산 삼각지 인근까지 밀고 들어왔다. 다리를 끊은 시점이 너무 앞섰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이로 인해 병력과 군수물자의 이동에 큰 지장이 생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미 군사고문단 소속 장교는 희생자를 500명에서 800명 사이로 보았으며, 신원이 밝혀진 사망자는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관 77명이다.
타임라인 기록 6개
- 1950년 6월 28일보도됨
한강인도교 폭파
1950년 6월 28일 이른 새벽 두 시 반, 국군이 한강인도교를 폭파했다.
- 1950년 6월 28일보도됨
북한군 진입과 폭파 시점 논란
그날 오전 여덟 시쯤 북한군 전차가 용산 삼각지 부근까지 나아갔다. 폭파 시점이 지나치게 이르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병력과 물자 수송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 1950년 8월 28일보도됨
최창식 대령 체포
적전비행죄 혐의로 최창식 대령이 붙잡혔다. 직접적인 계기는 경북 군위에서 발생한 지뢰 사고와 연관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1950년 9월 21일보도됨
최창식 대령 사형 집행
최창식 대령에 대해 내려진 사형 선고가 군 당국의 손으로 집행됐다.
- 1962년보도됨
재심 절차 개시
최창식 공병감 사건에 대해 재심이 열렸다.
- 1964년보도됨
무죄 확정과 사후 복권
재심 끝에 최창식 공병감은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사망 뒤 명예가 회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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