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 기억합니다사고2003-04-28 업데이트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

다른 이름: 대한민국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 · 해경 경비정 863함 침몰 사건 · 863호 침몰 사건

1974년 6월 28일 거진 앞바다에서 오징어잡이 어선을 보호하던 해경 경비정 863함이 조선인민군 해군 함정 3척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습니다. 국방부는 납북을 시도하던 함정들이 승무원의 저항에 부딪혀 격침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북측은 남측 경비정이 군사분계선 북쪽 해상에서 정탐을 하다 포격했으며 이에 대응해 격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승무원 다수가 희생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사건 이후 7월 11일 해양경찰대장이 책임을 지고 내무부장관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해경은 1986년 12월 30일 이 사건을 포함한 순직·전사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충혼탑을 건립했으며, 2002년과 2003년에 성역화 및 조경공사가 이어졌습니다.

타임라인 기록 8개

  1. 1974년 6월 28일보도됨

    경비정 863함 침몰

    오징어잡이 어선을 보호하던 해경 경비정 863함이 조선인민군 함정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습니다.

  2. 1974년 6월 28일보도됨

    양측 발표와 보도

    국방부는 863호가 납북 시도에 저항하다 격침됐다고 발표했고, 조선중앙통신은 남측 경비정 1척을 침몰시키고 승무원을 사로잡았다고 보도했습니다.

  3. 1974년 7월 1일보도됨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서 북측과 유엔군측이 사건 경위를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펼쳤습니다.

  4. 1974년 7월 2일보도됨

    시신 인양 시작

    7월 2일 어선이 시신 2구를, 7월 3일 경비정이 시신 2구를 인양했습니다. 이후 7월 15일까지 총 8구의 시신이 인양됐습니다.

  5. 1974년 7월 11일보도됨

    해양경찰대장 사의 표명

    해양경찰대장이 경비정 침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무부장관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6. 1986년 12월 30일보도됨

    충혼탑 건립

    해경은 이 사건을 포함한 순직·전사 호국영령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충혼탑을 건립했습니다.

  7. 2002년 4월보도됨

    충혼탑 성역화 작업

    2002년 4월과 6월에 충혼탑 성역화 작업이 실시됐습니다.

  8. 2003년 4월보도됨

    충혼탑 조경공사

    2003년 4월에 충혼탑 조경공사가 추가로 실시됐습니다.

이 사건, 잊지 않도록 기억해 둘까요?

앱에서 '기억하기'를 누르면 다음 전개가 나올 때 바로 알려드려요.

앱 출시 준비 중 · iOS / Android인스타그램에서 먼저 보기

이 사건의 일부 기록은 위키백과 문서(대한민국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를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위키백과에서 온 내용은 CC BY-SA 4.0 라이선스를 따르며, 같은 조건으로 다시 쓸 수 있어요.

국내외 언론·공식 기록·보관소를 대조해 AI가 정리한 기록이에요. 기사 본문·사진은 싣지 않고, 사실을 우리 말로 정리한 뒤 원문 링크를 붙여요. 저작권 침해 신고: 106ljune@gmail.com (받는 즉시 내려요). 확인됨=언론 2곳 이상·공식기록 일치, 보도됨=언론 1곳, 미확인=블로그·커뮤니티에만 있음. 중요한 내용은 출처에서 꼭 확인하세요. 잘못된 내용은 106ljune@gmail.com 으로 알려주세요.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 — 그 이후 어떻게 됐나 · 그때 그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