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된사회2021-06-28 업데이트

광주대단지 사건

다른 이름: 8·10 성남민권운동 · 광주대단지 폭동 · 성남 광주대단지 시위

1971년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경기도 광주군(현 성남시) 광주대단지에서 서울시 철거민 이주 정책에 항의하는 주민 시위와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주 주민들은 불법전매와 투기, 생계수단과 교통·기반 시설의 부족, 급격히 인상된 토지 대금에 반발했습니다. 주민 수만 명이 성남출장소를 점거하고 도시를 점령했으며, 정부가 대표에게 사과하고 요구를 수용하면서 사태가 3일 만에 진정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사태 진정 후 이주단지는 성남시로 승격됐습니다. 2021년 6월 28일 성남시는 이 사건의 명칭을 '8·10 성남민권운동'으로 변경했지만, 학계와 정부는 여전히 '광주대단지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타임라인 기록 5개

  1. 1969년보도됨

    철거민 대규모 강제 이주 시작

    서울시가 청계천, 영등포, 용산 등지의 무허가 판자촌 철거민을 경기도 광주군 대단지로 강제 이주시키기 시작했습니다. 1971년 8월까지 약 12만 명이 이주한 것으로 집계됩니다.

  2. 1971년 7월 7일보도됨

    토지 대금 대폭 인상 통지

    당초 평당 2,000원으로 약속했던 땅값을 평당 8,000원에서 최대 16,000원까지 올리고 일시불 납입을 통지했습니다. 이에 입주민들의 분노가 커졌습니다.

  3. 1971년 8월 10일보도됨

    주민 집결과 성남출장소 점거

    5만 명의 이주민이 경기도 성남출장소 앞에 집결해 요구사항을 내걸었고, 출장소에 불을 지르고 기물과 차량을 파괴했습니다. 이후 시위대가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4. 1971년 8월 12일보도됨

    정부 대응과 사태 진정

    정부가 행정안전부 차관과 경기도지사를 현장에 파견해 주민대표에게 사과하고 요구를 수용했습니다. 서울시장의 방송 담화로 성남시 승격과 요구 수용이 약속되면서 시민들이 자진 해산해 사태가 진정됐습니다.

  5. 2021년 6월 28일보도됨

    성남시, 사건 명칭 변경

    성남시가 논의 끝에 이 사건의 명칭을 '8·10 성남민권운동'으로 변경했습니다. 다만 학계와 정부는 여전히 '광주대단지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사건, 잊지 않도록 기억해 둘까요?

앱에서 '기억하기'를 누르면 다음 전개가 나올 때 바로 알려드려요.

앱 출시 준비 중 · iOS / Android인스타그램에서 먼저 보기

이 사건의 일부 기록은 위키백과 문서(8·10 성남민권운동)를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위키백과에서 온 내용은 CC BY-SA 4.0 라이선스를 따르며, 같은 조건으로 다시 쓸 수 있어요.

국내외 언론·공식 기록·보관소를 대조해 AI가 정리한 기록이에요. 기사 본문·사진은 싣지 않고, 사실을 우리 말로 정리한 뒤 원문 링크를 붙여요. 저작권 침해 신고: 106ljune@gmail.com (받는 즉시 내려요). 확인됨=언론 2곳 이상·공식기록 일치, 보도됨=언론 1곳, 미확인=블로그·커뮤니티에만 있음. 중요한 내용은 출처에서 꼭 확인하세요. 잘못된 내용은 106ljune@gmail.com 으로 알려주세요.

광주대단지 사건 — 그 이후 어떻게 됐나 · 그때 그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