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항쟁
1964년 박정희 정부의 한일국교정상화회담 추진에 반대하여 학생과 재야 세력이 벌인 운동입니다.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의 단식농성을 계기로 시위가 확산됐으며, 1964년 6월 3일 서울에서 대규모 거리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정부는 같은 날 계엄령을 선포해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타임라인 기록 6개
- 1964년 3월 6일보도됨
범국민 투쟁위원회 결성
재야 야당과 사회·종교·문화단체 대표 등 200명이 '대일굴욕외교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를 결성했습니다.
- 1964년 5월 30일보도됨
서울대 문리대 단식농성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이 자유쟁취궐기대회를 열고 단식농성에 들어갔으며, 이는 6·3 항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 1964년 6월 3일보도됨
6·3 시위와 계엄령 선포
서울 시내 학생들이 정오를 기해 거리로 나와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정부는 이날 서울시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 1964년 6월보도됨
시위 주동자 검거와 복역
계엄 이후 1,120명이 검거됐고, 348명은 내란 및 소요죄로 6개월간 복역하게 됐습니다.
- 1964년 6월 6일보도됨
동아일보사 침입 사건
무장군인들이 심야에 동아일보사에 침입해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학생들에게 호의적인 언론이었습니다.
- 1964년 7월 29일보도됨
계엄령 해제
7월 28일 시위가 진압된 뒤 이튿날인 29일 계엄령이 해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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